hot-meeting

 

 

 

양 성 옥

 

Hot-Meeting

 

 

   

 

 

▶ 전시기간 : 2004.6.29(화) - 7.4(일)까지

▶ 전시장소 : 대구문화예술회관

▶ 전시기획 : 김옥렬(독립큐레이터)

▶ 오픈행사 : 마임-조성진, 정가-우희자

 

  양성옥은 스스로를 야초(wild flower)라 일컫는다. 그래서인지 길을 걸을 때면 들판에 핀 잡초 하나도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비가 오면 비에 가슴을 적시고 눈이 오면 눈발처럼 팔랑이며 즐거워하는 모습에서는 50이 훌쩍 넘어선 나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그런 천진함이 있다. 바람이 불면 바람 소리에 눈 감고, 비가 오면 빗소리에 취하는 여린 감성을 가진 그가 그림 그리는 일에 열중할 때면, 신들린 사람처럼 활화산 같다가도 어느 날은 담담한 모습으로 마치 명상에 잠긴 사람처럼 빗자루를 들고 묵묵히 쓸고 또 쓴다.

  쓸고 또 쓸어서 빗자루가 지나가고 남은 흔적들의 두께는 마치 오랜 세월 쌓인 삶의 무게 같기도 하고, 바다의 수평선 너머 아련한 미지의 세계가 펼쳐진 것 같기도 하다. 이 같은 시간성과 공간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빗자루를 들고 마치 퍼포먼스를 하듯 행위에 의해 만들어 진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게 생각되어 어떻게 해서 빗자루를 들고 그림을 그리게 되었냐고 물었다. 그는 ‘빗자루를 화두로 삼은 것은 내 삶의 욕망과 눈물 그리고 지나간 날들의 고통을 쓸어버리려는 마음으로 화폭 위를 혼신을 다해 쓸고 또 쓸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시화집을 통해서 “빗자루에 듬뿍 물감 묻혀 흰 캔버스 위에 삶의 색깔 다 쏟아내고 이 몸 구석구석 걸레질 하고 싶다”고 한 것처럼, 그에게 있어 빗자루는 쓸어서 비우기도 하는 것이지만 쓸면서 다시 채우는 그 무엇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비워야 할 그 무엇’과 다시 ‘채워야할 그 무엇’이 교차되는 지점이 그의 작업에 어떻게 드러나는지 더욱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작업은 쓸고 또 쓰는 행위의 반복이다. 신체 노동이 반복될 때 정신은 육체에 녹아들어 하나가 된다. 그렇게 쓸고 또 쓸어내는 작업을 하면서 비로소 그 자신이 얻은 것이라면, 나를 버려야(비워야 할 그 무엇) 내가 더 잘 보이고, 내가 보여야 나 아닌 것(채워야 할 그 무엇)도 더 잘 보인다는 것이다. 비우고 채우는 것을 반복해 가며 얻고자 노력하는 자유와 평화에 대한 열망을 그는 캔버스나 한지를 바닥에 펼쳐 놓고 빗자루로 쓸고 또 쓸면서 두드리고 또 두드려 가는 가운데 이루어 간다. 이를테면 대지의 기운을 받기위해 바닥에 펼쳐 놓은 화폭과 빗자루 그리고 그 자신이 하나가 되는 순간, ‘뜨거운 만남’이 이루어지는 그곳에서 탄생되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자유이자 평화일 것이다. 그런 ‘뜨거운 만남’ 속에서 잉태된 것이 바로 그의 ‘빗자루 그림’이다.

 

  그런 ‘뜨거운 만남’으로 잉태하여 태어난 양성옥의 빗자루 그림에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감정의 만남이 있다. 하나의 만남은 쓸고 또 쓸면서 비우고 또 다시 채워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명상적(contemplative)인 만남(‘쓸다’시리즈) 이라면, 다른 하나는 두드리고 또 두드린 후에 경험했을 희열 후에 오는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피어난 자유로운 생명력이다(‘두드리다’시리즈).    

 

  그가 두드리고 또 두드리며 열어 놓은 것은 스스로를 야초(野草)라 말했듯이, 바로 그 자신이 투영된 들풀이자 들풀의 생명력이다. 그래서 그는 자연의 생명력과 치유력을 들풀을 통해 본다. 이처럼 들풀의 리얼리티나 들풀의 속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그의 첫 기억을 떠 올리기를 ‘어느 날, 문득 길을 걷다 이리 저리 흩어져 있는 들풀을 보게 되면서 그 들풀들은 서로의 자리(뿌리)를 가지고서, 나란히 돋아나 잎이 무성해도 그 무질서 가운데 서로 방해 하지 않고 상생(相生)하고 있는 자연의 질서를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로 상생하며 살아가는 들풀들의 모습에서 자연의 질서를 배울 수 있었다는 그의 소박한 들풀에 대한 사랑은 이후 빗자루로 그림을 그리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들풀의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하는데 있어 가장 적절한 재료를 찾던 중에 사계절 시들지 않고 푸른 잎과 강인한 모습을 지닌 대나무를 보고 들풀의 생명력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빗자루를 만들어 작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더욱이 선화(禪畵)를 주제로 그림 공부를 하던 중에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다 도(道)를 틔운 혜능 스님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어떤 일이든 한 가지 일에 몰두하다보면, 그 속에서 도(道)를 깨닫게 될 수도 있다는 믿음이 생기자 들풀의 생명력과 빗자루는 그의 작업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하게 되었다.

 

  양성옥은 ‘빗자루로 그림 그리는 여자’라는 제목으로 첫 시집을 내놓기도 했지만, 그동안 빗자루로 그린 그림들이 여덟 번의 개인전 중에서 다섯 번에 걸쳐 있는 것을 보아도 빗자루하면 떠오르는 ‘빗자루 작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 주제인 ‘뜨거운 만남’에서 보여 주는 것은 늦게 시작했기에 더욱 치열하게 작업해온 10여 년 간의 노정에서 얻은 땀과 화가의 길에 들어서기 전부터 삶 속에서 축적되어 있던 사색의 깊이가 빗자루 그림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소중한 결실들이다. 그렇기에 ‘뜨거운 만남’은 양성옥의 ‘들풀’시리즈의 변화 과정을 볼 수 있는 기회일 뿐 아니라, 애정 어린 땀과 사색이 묻어나는 그 동안의 작업적 성과와 뜨겁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발표될 작품들은 단 한명의 관객도 없는 조용한 작업실에서 홀로 빗자루 퍼포먼스를 하면서 굿을 하듯 춤추며 흥에 겨워 황홀한 시간을 가졌을 행위뿐 아니라, 마치 도를 닦는 사람처럼 담담(淡淡)하게 쓸고 또 쓸면서 그가 작업 과정에서 느꼈을 희열의 시간들이 화폭 속에 한껏 배어나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전시된 작품들은 ‘쓸다’와 ‘두드리다’ 시리즈인 평면회화 작업들이 있고(문예회관 6.7전시실), 공간 설치는 전통적인 병풍과 가리개라는 전통의 형식에 현대적인 빗자루 그림과의 만남을 시도 한다(8전시실). 마지막으로 영상에서는 시각적 요소(자연)와 청각적 요소(인간)의 결합을 통해 자연의 본성이자 인간의 본성과도 같은 물의 이미지가 혼돈(chaos)의 상태에서 점차 평화와 자유의 상태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 놓는다(9전시실). 이러한 다양한 방식의 시도는 자신의 작업적 역량을 확장하려는 의도이기 보다는 그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깊이를 다양한 렌즈를 통해 소통하고자 노력한 결과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이전의 작업에서 시도한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 하나의 화면에 일정한 선을 구획함으로써 면을 분할하는 구성방식이 이번 전시를 통해서 좀 더 구체화(병풍이나 가리개)되고 있을 뿐 아니라, 영상에서는 들풀에서 시작해서 빗자루그림을 통해 얻고자 했던 자유로운 생명력과 상생의 평화가 물의 이미지를 통해서도 투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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