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인 卽, 器인 흙’展
전시주최 : 대구 YMCA 전시장소 : 빛살미술관(대구 삼덕동, 1936년에 지어진 일본식 가옥을 복원한 마을미술관) 전시기간 : 2001.2.13-2.25 전시기획 : 김옥렬 오픈행사 : 조성진의 마임 퍼포먼스
이번 빛살 미술관 개관 기념으로 열리는 ‘美인 卽, 器인 흙’전은 아름다움에 대한 무성한 이론과 방법들이 지닌 관념적 요소나 추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나 그릇에 담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기능성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보려는 시도이다. 빛살미술관이 지닌 가옥 형태의 공간적 특성으로 보아 앞으로의 전시 방향은 생활과 미술이 함께 어우러져 누구나 쉽게 호흡할 수 있는 방법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가옥형태라는 공간의 특성을 고려해서 이기도 하지만, 대중과의 거리감을 좁혀 생활 속에서 미술을 만날 수 있는 방법적 모색들을 통해 사회성을 가져야 한다는데 더 큰 이유가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현대의 미술가들이 천재성이라는 최면술에 걸려 만들어 내는독창성이 대중과의 거리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는 점이 없지 않은 지금, 공예전시의 활성화를 통해 생활과 미술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나아가 미술의 가능성이 소수의 천재를 통해서이기보다 다수의 대중 속에서 호흡할 수 있는 길을 열어 가야 한다는 인식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美인 卽, 器인 흙’전은 생활과 미술의 관계를 좁힐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적 모색에 주목하고자한 전시이다. 공예가 직접적인 실용성 위에 성립한다는 점에서 회화나 조각과 구별되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의 미술공예는 실용성뿐만이 아니라 예술성을 강조하면서 감상에 중점을 두고 작업하는 경향 등 다양한 방법으로 수용자 층을 확보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의미에서 오늘날 현대미술이 안고 있는 소통의 한계를 공예가 지닌 합리성을 통해 풀어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적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전시에서 비정형의 자유분방함과 투박한 맛을 강조한 세 명의 도예가들은 자연스런 조형적 요소로 ‘미를 구하지 않으면서 미를 얻는’방법적 모색을 통해 도자기가 주는 질박하고 깊은 맛을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한다. 민경영은 ‘도예의 일상성으로 돌아가자’라는 의지에서처럼 공예적 본질에 충실하고자 도자기가 지닌 기능적 특성을 강조한다. 기능적 요소가 성취되면 흙의 유연성을 살려가며 손가락으로 누르거나 긁어낸 다양한 형태의 선으로 기능적인 요소가 깨어지지 않는 틀 속에서 장식적인 요소까지를 자연스럽게 추구한다. 그의 기(器)에서 일견되는이 같은 기능성과 장식적 요소의 추구는 유약과 흙의 반응이 만들어 내는 차이를 회화적 요소로 그려내고 있는 점인데, 이는 도자기의 표면이 지닌 평면적인 요소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시도로 흙이 지닌 투박한 힘과 회화적 요소를 결합시켜 도자기의 기능성뿐만이 아닌 예술성 또한 실현하고 있음이다.
박성백은 그 자신의 말에서처럼 도자기를 통해 ‘자연, 물질, 생명, 사람 그리고 불완전함과 고통 모두를 사랑하며지극히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오브제와 접시들 안에 넉넉한 인간의 영혼과 삶을 담아’내고자 시도한다. 그래서 그 도자기에서는 오랜 시간 퇴적되어 쌓인 삶의 흔적과 시간성이 도자기의 갈라진 틈이나 흙에 녹아든 철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형상을 통해 나타난다. 다양한 재료의 방법적 모색에서 나타나는 그의 이러한 작업은 흙을 통한 그 자신의 삶의 경험뿐만이 아니라 삶의 기록이자 현장이기도 하다. 흙과 흙이 서로 조응하는 관계를 보여 주듯 나타나는갈라진 주름은 도자기의 예술성을 보여주는 조형적 울림이자 흙이 흙이고자 하는 재료의 특성까지도 고려한 깊은 성찰과 작업적 성과인 것이다. -평론보기 -
‘인위적인 개입을 거부하고 무위적인 태도로 자유분방한 흙의 질감을 살려내고 싶다’고 하는 태성룡은 조잡하거나 거친 것까지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 ‘똑같은 것을 반복해서 만들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비정형성’에서 도자기의 자연스럽고 질박한 맛을 찾기 위해 무심(無心)과 비합리성을 추구한다. 그래서 그의 도자기는 흙을 움켜쥐듯 나타나는 손맛과 흙을 뜯어낼 때 만들어지는 거친 힘과 소박한 형태미를 그대로 살려 놓기도 한다. 그가 흙/손길/불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인고의 시간 속에서 기다림을 배우고, 또 장작불을 태우며 마음을 비웠다가 다시 채우는 반복된 과정을 통해서 자연의 힘과 생명의 끈질김을 배워 가는 것처럼, ‘美인 卽, 器인 흙’에서 우리도 흙과 손길과 불이 만나 부르는 생명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 볼 수 있지 않을까. 곧 일상 속에서.
김옥렬(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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