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신화 展
-몸과 언어로서-
김 옥 렬(미술평론)
그림이 하려는 말을 우리는 보는가? 그림은 말을 하는가? 그렇다면 우린 얼마만큼의 그림을 듣는가? 나는 오늘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그림 앞에서 교감을 쌓기 위한 프로포즈를 시도한다. 아직 교감을 시도하지도 않았거나 시도 자체를 꿈꾸지 않는 많은 이들과 함께 눈이 귀가되고, 귀가 눈이 되어서라도... 사실 그림을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이해를 전제하다간 오해가 되기 쉬운 것이 오늘날의 현대 미술이다. 많은 사람들은 현대미술 앞에서 할 말이 없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술에 대한 이해를 할 사이도 없이, 정확히 말해 돌아볼 여력도 제공받지 못한 채, 미술은 극단적 객관성(자연주의)과 주관성(모더니즘)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그 자체 내에서 분열된 주체로서 거대 담론만을 형성해 왔다. 일테면 계몽, 자유, 해방 등등 인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거대이념의 메시지들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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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현대미술이 어느 부분 외적 현실과 차단된 자기 폐쇄의 세계를 고집함으로써 도피의 미술, 미술을 위한 미술이 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존재의 당위성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현대의 신화'展을 통해 현대미술의 다양한 양상들에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입증해 보고자 한다. 일테면현대미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보고자 하는 것이 이번 기획의 목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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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신화'展에 참여하는 작가들(권오봉, 정태경, 권기철, 장재희, 정영혁, 정은유)은 10년에서 20년 이상을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서로 다른 예술방식(서양화, 사진, 한국화 전공자)으로 임해 왔다. 그래서 동일한 주제를 해석하는 방식은 각자의 정신세계나 가치관에 따라 다양화되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현대의 신화'展을 통해 주목해 볼 수 있는 점은 분명, 함께 공유할 수밖에 없는 동질성 내지 원초적 이미지를 현대미술이라고 하는 문맥 안에서 찾아본다는 점이다.
'현대의 신화'라고 하는 주제 설정에서 신화의 출발점은 근원을 설명하고자 하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현재 상태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선례들을 보전한다는 기능주의적 견해에서 출발한다. 일테면 병아리가 알에서부터 나오는 生來的인 방법에 비견되는 기능적 행동의 양태인 원형적 이미지들(ａｒｏｈｅｔｙｐａｌ ｉｍａｇｅｓ) 처럼, 현대미술의 다양한 표현 역시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신화는 고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도 있다. 일테면 외계인, 4차원, 텔레파시 또는 기술문명이 만들어낸 테크놀러지 신화, 미디어 신화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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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와 서울에서 활동하는 여섯명의 작가들은 자신의 직감에 의존하여 화면을 긁어가며 이미지를 거부한 채, 손의 창조적 자발성이나 프로세스 그 자체를 보여주고(권오봉), 예술에 대한 부단한 물음을 가지며 현대미술이 제기하는 전반적인 문제, 한편으론 삶과 맞닥뜨린 현실인식을 <황무지>를 통해 캔버스 바탕을 이미지의 무화(無化) 혹은 소멸로 응시하고(정태경), 분방한 터치의 음율과 확장된 평면효과를 추구함으로써 공간과의 조응을 시도하고(권기철), 최소한의 색채로 바탕을 겹쳐 정교함과 밀도를 높여 존재를 개시(開示)하기 위한 개인적 신화의 세계를 그려내고(장재희), 유년기의 꿈에 갇혀 낯선 이미지와 고독한 탐닉을 통해 찰나를 소유하고(정영혁), 삶의 근원적 충동인 디오니소스적 비극성을 신체의 부분들에 옮겨 놓고 더 높은 삶의 적극성을 도출해 내려는 시도(정은유)를 한다.
그들은 예술적 체험의 영역을 철저한 자기비판과 자기체험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인간내면의 울림과 그 울림의 흔적을 만난다. 1999. 5
<전문은 "현대미술의 표정과 교감" 154-170쪽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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